2008년 10월 10일
[영화] 비몽, 지독하다

처음 김기덕 감독, 이나영&오다기리 죠 주연의 영화가 만들어 질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
나는 꽤 두근거렸던 것 같다. 어쩌면 순간 짧은 비명을 질렀는 지도 모르겠다.
영화는 날짜 세며 기다리면 속이 타들어가는 괴로움을 느낀 다는 것을 알게 된 쯔음이었기 때
문에 그냥 잊고 지냈는데 역시 잊고 지내니 금방 결과물이 나온다.
새벽 2시에 끝나는 심야 영화라 졸지나 않을까 무척 걱정하기도 했다. 우행시에서 나영언니
예쁜 것도 한 두컷이지 영화가 지루하니까 아무 소용 없더라는 깨달음(나로서는 큰 깨달음이
었다.)을 얻었으므로 졸리면 바로 잘 것 같았다.
영화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.
김기덕 영화야 워낙 취향을 타는 영화이니 졸린 사람은 무척 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.
김기덕 영화를 비몽을 제외하고 세 네 편 정도 봤는데 솔직히 그동안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이해
가 안 가는 부분도 많았었다. 그런데 [비몽]은 그동안의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.
내 생각엔 [비몽]은 지금까지 나온 김기덕 영화 중에 가장 대중적인 영화이다.
일단 주연배우부터가 지금까지 썼던 배우 중에서 제일 메이저하달까. 어딘가 마이너인 메이저이
지만 톱스타 두 명을 기용한 건 처음 아닌가? 김기덕 영화는 배우가 너무 두드러지면 안 되는 영
화라고 생각했었다. 그게 김기덕 스타일이라고 생각했고. 그런데 감독 역량인지 배우 역량인지
아니면 둘 다 인지 이나영과 오다기리 죠는 [비몽]에 너무나 잘 녹아 들어 있었다.
이나영은 물론 우행시보다 훨씬 아름다웠고(예쁨이 아니다.), 어떤 영화에서보다 깊었다.
[아는 여자]보다 사랑스러웠던 것도 같다(이건 그냥 취향이 변태인가?).
쓰고 보니 대중적인 면은 배우 밖에 없나, 싶기도 하다.
하지만 전체적으로 무엇인가 계속 '이거 다른 영화보다 꽤나 대중적이잖아.'하는 생각이 계속
들었다. 왜 일까.
불교 코드나 일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독특한 대사, 그리고 그 지독함은 그대로인 것 같다.
지독함이 호러 수준이었다. 오다기리 죠의 그 어둡고 처절한 행위나 이나영의 창백함에도 소름이
돋았지만 오다기리 죠의 전 여자친구의 미소는 진짜 무서웠다.
김기덕 영화의 인물들은 왜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걸까.
유독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면이다.
어둡고 아름다우며 창백하고 꿈처럼 흐렸다가 현실처럼 말갛다. 빛의 활용이나 색감이 좋아서 그
와중에 눈이 즐거울 정도였다. 하얀 강 위의 나비 날개짓이 슬프고 고왔다.
김기덕 영화에 진저리만 쳐왔는데 이제 김기덕이 앞으로 만들 영화들에 기대가 된다.
이 사람, 언젠가 진짜 좋은 거 괜찮은 거 엄청난 거 하나 만들지도 모른다- 그런 기대가 됐다.
극장에서 입장 기다리고 있을 때 비몽 보고 나온 사람들이 나오길래 친구랑 사람들 반응을 열심히
살폈다. 그런데 다들 아무 말도 안 하고 미소 혹은 멋쩍은 미소 혹은 헛웃음만 지었다. 도저히 영화
가 어떤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. 나랑 내 친구, 영화 보고 나오면서 그 사람들이랑 비슷한 표정을
지으면서 나왔다.
친구는 어이없다고 웃어대고 나는 헛웃음.
김기덕 영화치고 아름답게 여겨져서 칭찬을 좀 해대긴 했는데 그렇다고 아주 좋았다고는 못하겠다.
인물 네 명이 한꺼번에 나와서 싸우는 장면은 사이코 드라마인가 싶을 정도였고 자기 세계에 지나치
게 빠져있다는 느낌도 여전했다. 음악은 좋을 때도 많았지만 과할 때도 많았다.
[비몽]을 보고 나서 또 느낀게 생각해보면 김기덕 영화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거다. 메세지가 명료
한데다 대사와 상징으로 계속 반복한다. [비몽]이 특히 그런데, 누구든 영화를 보고 나서 "그래서 하고
싶은 말이 뭔데?!!"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. (그 장면은 대체 뭐야, 그래서 어떻게 된건데- 그
런 말은 좀 나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.)
+++ 승리의 장미희
# by | 2008/10/10 16:46 | 장난감 | 트랙백 | 덧글(1)





